2018년 6월 21일 아침묵상 

 길르앗의 유향 
 예레미야 8:18-22 

18  슬프다 나의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내 마음이 병들었도다

19  딸 내 백성의 심히 먼 땅에서 부르짖는 소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 계시지 아니한가, 그의 왕이 그 가운데 계시지 아니한가 그들이 어찌하여 그 조각한 신상과 이방의 헛된 것들로 나를 격노하게 하였는고 하시니

20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 하는도다

21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

22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 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찌 됨인고

 본문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로 불립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마를 틈이 없었습니다. 그의 근심은 그 누구도 위로할 수 없는 근심이었고, 그 마음은 병이 들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울어야 했던 이유는 자기 민족이 장차 이방 땅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다 백성들은 유일한 참신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조각한 신상과 이방의 헛된 것들로 하나님을 대체해버렸습니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의 종교적 타락과 도덕적 타락은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격노하게 하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레미야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심판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심판은 돌이킬 수가 없는 것이었으며, 그러므로 그에게는 유다를 위해 기도하는 것마저 허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민족의 심판을 선포하는 그의 가슴은 타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눈물로 심판을 선포했으며, 그로 인해 거짓 선지자 취급을 받았으며, 심지어는 매국노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그를 더 아프게 하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상처투성이이지만 그것을 치료받지 못함을 가슴 아파합니다. 그는 길르앗에 유향이 있고 그것을 배합하여 치료제를 만들 수 있는 의사가 있는데 이스라엘은 치료를 받지를 못하고 있다는 표현을 합니다. 이 말씀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길르앗의 유향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길르앗은 요단강 동쪽에 있는 지방의 이름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피난처의 역할을 했던 곳일 뿐만 아니라, 도피성이 세워졌던 곳이기도 합니다. 야곱이 에서를 피해 도망하는 길에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고, 다윗이 압살롬의 공격을 피해 도망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좋은 피난처였던 길르앗을 유명하게 만들어 준 것은 사실 유향나무였습니다. 유향은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질병을 치유하는 최고 효능을 가진 최고가의 약재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것을 조합하여 약으로 만드는 의사도 많았던 것이지요. 유향은 주변국가로 수출이 되던 최고의 수출 상품이었습니다. 

길르앗의 유향은 상처를 입으면 상처부위에 눈물처럼 진액이 흘러나오는데 그것이 향료로 사용되었습니다. 길르앗의 향료는 상처난 곳에 바르면 진통효과가 있고, 상처가 치유가  될 뿐만 아니라 그 상처부위에서 향기까지 났습니다. 

본문에서 얘기된 길르앗의 유향은 말씀을 의미하고, 유향을 버무려 약재를 만드는 의사는 말씀을 조합하여 치료하는 선지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있고, 진정한 치유자되시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도 있는데, 그들은 치유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상처가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난 상처였기 때문입니다. 

 적용 

1. 목회자의 눈에 눈물이 마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말씀을 전하고 또 전하여도 성도들에게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때입니다. 하나님의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해야 하는 순간은 목회자의 마음은 찢어집니다. 그런데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하면 반드시 핍박이 옵니다. 

성도들은 회개의 메시지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귀에 듣기 좋은 소리, 잘못했음에도 칭찬하는 소리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 평안입니다. 거짓 평안을 전하는 자는 거짓 선지자입니다. 

성도들은 목회자가 번영의 메시지를 전할 때가 아닌, 회개의 메시지를 전할 때에 아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돌이킬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 오히려 번영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길르앗의 유향은 상처입었을 때 향료가 나옵니다.

 길르앗의 유향나무는 상처를 입으면 눈물과 같은 진액이 나오고 그 진액이 향료와 치료제로 사용되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상처를 싸매고 치유하기 위해 채찍에 맞으셨으며 십자가에서 그 몸이 찢기셨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사야 53:5). 

예수님께서 몸이 찢기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상처를 치유받을 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향나무가 진액을 쏟아내어 향기를 발하듯, 그 몸에서 물과 피를 쏟아내어 우리의 향기가 되어 주셨고 우리의 치료제가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의 고통은 사라지고 상처는 아물게 되었으며 오히려 우리의 상처 부위에서는 향기가 나기 시작합니다. 

3. 우리는 상처입은 치유자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상처는 아픈 것입니다. 그 상처가 치유되지 않으면 우리의 심령은 일그러집니다. 그 상처를 타고 마귀가 들어오며, 우리를 가시돋힌 사람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상처가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더 큰 상처를 안기곤 합니다. 그러므로 상처는 치유가 되어져야 합니다. 

상처는 길르앗의 향유되신 예수님을 통해서 온전히 치유될 수 있습니다. 예수 안에서 치유를 받으면 그 상처부위가 아물 뿐 아니라 오히려 상처에서 향을 발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상처가 치유된 사람은 또 다른 길르앗의 유향이 될 수 있습니다. 상처를 입어서 진액이 흘러나왔는데, 그것이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사용하는 향료가 되는 것이지요. 아파 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의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파 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의 상처를 싸매고 그 상처에서 오히려 향이 나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상처입은 치유자가 되어 주셨던 것처럼, 우리 역시 예수 안에서 회복이 되고 나면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입은 치유자가 되어 줄수 있는 것입니다.

4. 길르앗의 유향과 의사를 두고도 치유받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길르앗의 유향되시고 진정한 의사가 되시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손을 뻗어 찾기만 하면 그 치유의 능력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길르앗의 향료를 눈 앞에 두고도 다른 약을 찾아 사방을 헤매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예수 안에 치유가 있습니다. 예수 안에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 가운데에 만날 수 있습니다. 말씀이 선포될 때에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회개의 메시지, 찌르는 메시지에 오히려 민감하십시오. 말씀에 의해 상처가 나야 합니다. 그래야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뿜을 수가 있습니다. 

 적용질문 

1. 우리를 위해 기꺼이 상처를 받으신 예수님을 유일한 치유자로 삼습니까?

2.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음을 믿으십니까?

3. 상처입은 치유자가 되어 동일한 상처로 고통받는 사람을 위로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4. 상처입었을 때, 아플 때에 손을 뻗어 예수님을 붙잡습니까?

5. 회개의 메시지, 찌르는 메시지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기도 

우리를 위해 몸이 찢기시고 피를 흘려, 길르앗의 향료가 되어주신 주님. 오늘도 주님께 손을 뻗습니다. 우리 영혼과 육신의 모든 상처와 아픔을 싸매시고, 상처입은 치유자로 설 수 있도록 우리를 주님의 향기로 채워 주시옵소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시고 특별히 찌르는 말씀, 도전의 말씀에 민감하게 하여 주시옵소서.